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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이 곧 현실이다.

Calvingo 2023. 3. 28. 21:27

가끔씩 엄마와 하는 말이 있다.
우리집은 가난한 집이었는데 우리는 그게 가난한 줄 몰랐다는 이야기.
지금 생각해보면 10년전쯤까지만 해도 가난한 집이었는데, 우리는 그게 가난한 것인줄 몰라서 기죽지도 비굴하게 살지도 않았다.
부모님은 책, 교육, 또 필요한 것이 있으면 최상의 것을 사주셨고, 모르는 남들이 보면 가난한 집인줄 모를 정도로 우리 가족은 가장 품위있는 차림새를 하고 다녔다. 초등학생때는 윤선생, 씽크빅, 빨간펜... 어떤 아이보다 많은 학습지를 했고 학원도 다니고 피아노 학원도 다녔다.

고등학교때는 나는 건축과 패션에 관심이 있어 미대를 준비한다고 부잣집 애들로 가득했던 미술입시학원도 다녔고(지금 생각해보면 우리집 수입 기준으로는 정말 큰 돈이었다) 학교는 보통 경제적 수준이 비슷한 아이들끼리 친구가 되었는데 학창시절 가난한 줄 모르는 나는 의도하지 않았지만 잘사는 집 친구들의 한 일원이었다. 물론 친구들과 대화를 하다보면 해외여행같은 이야기때문에 가끔씩 돈이 없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그게 '가난'이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가난한 줄 모르고 살았더니 가난한 아이들처럼 살지 않았다.
못산다고 근심하지도 않았고, 패션에도 큰 관심을 가졌고, 사고싶은 게 있으면 사달라고 졸랐다.

그렇게 가난한 줄 모르는 우리 가족의 세상은 가난하지 않았다. 도와줄 사람이 있으면 최대한 도왔고 엄마는 티비의 아프리카 기아 광고를 보면 후원전화를 했고, 항상 우리보다 없는 자에게 베푸는 부모님이셨다. 나도 그런 부모님을 보고 자랐기에 주변에 힘든 사람이 있으면 괜히 더 신경쓰게 되고 작은 기프티콘이지만 응원문자 한 번 보내게 된다. 만약 누군가에게 그 시절의 우리 가정과 같은 형편을 겪으라고 한다면 아마 대부분은 자신의 가난을 불평하고 부끄러워했을 것이다. 남을 돕기보다는 도움을 받길 원했을 것이다. 그러면 그의 세상은 가난한 것이다. 같은 형편을 지니고도 둘은 전혀 다른 세상을 산다.
비록 미대에 떨어지긴 했지만(그리고 그것이 나를 극심한 우울증으로 끌고갔지만), 가난한 줄 모르는 나는 미술에 도전을 했고 꿈을 꾸는 법을 배웠다. 자신이 가난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마 형편때문에 미대에 가는 꿈을 꾼다는 것은 사치처럼 여길 것이다.
없는 형편에 하고 싶은 것 다한 우리 가족이 한심해보이는가? 더 가난해졌을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아니, 남들이 말하는 상류층은 아니더라도 이제 우리가정은 남들에게 충분히 나눠줄 수 있는 풍요함을 가지게 되었다. 그것은 부모님의 정신이 가난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같은 조건을 지니고도 사람은 자신이 생각하는대로 행동하고 서로 다른 세계를 형성하고 그것은 다른 현실이 된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자는 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기회를 찾고, 할 수 밖에 없는 이유들을 찾는다. 할 수 없다고 하는 자는 할 수 없는 이유를 찾는다.

내가 대학원에 뒤늦게 진학했을 때, 나를 면접보는 교수들은 왜 굳이 대학원에 오냐고 물었다(여전히 술자리에서 똑같은 질문을 하신다.). 동기들은 왜 회사를 그만두고 공부하냐고 물었다. 어떤 사람은 너무 늦은 것 같다고 돌려 말했다. 퇴사한 회사의 상사는 현실적으로 생각하라고 말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한국 사회가 요구하는 나이, 나이, 나이. 나는 그들이 사는 세상에 살고 있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그들의 사고방식 자체가 이해가 안갔다.
하고자 하면 하는거고. 배우고 싶으면 배우는거다. 인간이 그저 먹고 살기 위해서 일하기 위해서 태어났는가? 공부를 그저 학벌과 허세로 보고는 정작 공부가 세상과 사람을 더 넓은 관점에서 바라보게 만들고 삶을 더 풍요롭게 만든다는 사실을 한국인들은 잘 모르는 것 같다. (그래서 당장 먹고 사는 것과는 관련이 없는 철학과 같은 것은 인기가 없다.)
뒤늦게 꿈이 생기면 도전해보는거고, 운좋게 기회가 오면 잡으면 되는거다.

내 세계는 내가 만든다. 내가 생각하는대로 현실이 된다.
환경도 중요하지만 내가 그렇게 살지 않으면 되는거다. 내가 살고있는 곳, 만나는 사람, 주변 환경, 수저, 타고난 재능탓 하지말라. 마음가짐이 먼저다. 언제까지 수동태로 살 것인가?  난 비록 한국에 살고 있지만 지금 캐나다에 살고 있다고 생각을 하고 하루를 보낸다.(좀 웃긴가? 그래도 사실)
가난한 것과 어울린다고 후줄근하게 입지 말자. 가난하다고 마음까지 가난해지지 말자. 가난하다고 꿈꾸는 것이 사치라고 말하지 말자.
늦었다고 말하는 자들의 말을 진실로 받아들이지 말라.
하기로 했으면 그리고 하고 싶으면 끝까지 밀고 가라.

때로는 사람들이 말하는 진실을 모르는 것이 나을 때가 있다. 그리고 그 진실은 진실이 아닐 때가 있다.
불가능이 뭐야? 나이가 뭐야? 사람들이 만들어놓은 규칙들에 얽매이지 않을 것이다.
가난해도 가난을 모르던 우리 가족처럼, 불가능을 모르는 사람으로 그렇게 살아갈 것이다. 그리고 반드시 이뤄낼 것이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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