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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은 망종의 매미소리 같은 것

Calvingo 2021. 6. 16. 14:50


무엇을 해도 집중이 안된다.
사무실에 있는 내내 긴장의 연속이다.
주말엔 현실이라도 잊자 싶어 좋아하던 영화 감상을 해보지만 멍하니 스크린만 바라보는 기분이다.
이런 적은 처음이다 싶어 한편 더 본다. 집중이 안된다.
또 한편 더 본다. 안된다. 그렇게 주말내내 영화 열 편을 보았다.
영화를 보고싶어서가 아니라 이런 적은 처음이라 내 유일한 취미가 사라지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예전만큼 감동이 없다 재밌지도 않다.
흥미로워하던 영화 소품과 의상은 나의 관심을 끌지못한다.
나는 나를 잃어가는 기분이다. 혹자는 이를 어른이 된다고 표현한다.
그냥 먹고 사는 것 외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다.
좋아하던 예술 감상이나 여행은 옛일이 된지 오래다.

사무실에 앉아있는데 터질것만 같았다.
주변에 있는 모든 것을 부숴버리고 싶었다.
점심은 굶었다. 누굴 마주하며 식사하기엔 나 스스로조차도 감당하기 벅차 웃으며 대하기 어려워서. 텅 빈 배로 늘 오르던 산책길을 올랐다.
쨍쨍한 햇빛을 피해 쉼터의 벤치에 앉았다.
앉아있을 힘도 없어 벤치에 누웠다. 누가 지나가든지 아무것도 신경쓰이지 않았다. 놀러온 몇몇 부부가 한창 대화를 하며 적막을 깨더니 자리를 떠났다. 고요함이 찾아왔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 풀잎 부대끼는 소리, 새소리가 들려온다. 풀벌레소리, 정체모를 동물의 소리가 들려온다. 그리고 매미소리가 들렸다.
아직은 때가 아니라 한여름의 매미소리가 아니다. 남들보다 조금 이르게 나온 매미 한마리의 울음소리다. 회사일은 잊혀졌다. 회사원의 나도 잊었다.
바람소리로 타고오는 한 매미의 울음소리에 행복했던 어린날의 여름 시절이 떠올라 기분이 조금 나아졌다.
그런데 다시 큰 기구를 실은 트럭이 오는 모양이다. 또 시끄러워지기 시작했다. 잠시 나를 기분 좋게 했던 매미울음소리는 묻히기 시작했다. 불안과 긴장감이 다시 나를 찾아오는 듯했다.
마음속 평화를 지키려 온갖 소음 속에서 매미 울음소리를 찾으려 청각을 곤두세웠다. 아, 들린다. 겨우겨우 들린다.
아까만큼은 아니지만 조금 평안을 찾았다.

문득 생각한다. 행복도 이런걸까?
울창한 숲 속 고작 매미 한마리의 울음소리같은 것.
온힘으로 귀기울이지 않으면 찾을 수 없는 것.
너무나 작은 것. 그래서 존재조차도 잊혀지기 쉬운 것.
실은 스트레스와 긴장같은 소음이 더 큰 것.
찾겠다고 마음 먹지 않으면 발견하기 어려운 것.
매미는 언젠가 죽을 것이다. 저 기계소리는 한참을 몇십년이 지나도록 고장나지 않은채 다른 어딘가에서 비슷한 소음을 내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