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ite

가끔은 이상해도 괜찮아

Calvingo 2021. 2. 17. 21:38
내가 이 심정을 잘알지

나름 큰 실수를 저질렀다.

처음엔 머리부터 발끝까지 쥐가 나면서
흔하게 보았지만 결코 경험해보지 못했던 문장,
"눈 앞이 깜깜해졌다. 머리가 새하얘졌다."를
생생하게 경험할 수 있었다.

그 실수가 어떤 것인지는 상세하게 적을 수는 없지만...
1초가 1시간같고 1시간이 하루 같은 괴로운 시간이었다.

실수로 인해 가장 두려웠던 것은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에 대한 것이었는데
아마 아무도 나를 모르고, 행동을 모르고, 나의 생각을 짐작할 수 없다면 나는 괴롭지 않았을 것이다.
어떤 일도 겪지 않은듯 일상의 그저그런 하루였던 것처럼 은근슬쩍 퉁쳤을지도 모른다. 아마 타인의 존재로 인해 우리의 잘못은 우리를 더 괴롭히는 것일지도.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런 별일 속에는
실수를 재밌는 에피소드 하나쯤으로 둔갑시켜버리고 만회해버리려는 내가 있었다는 것이다.
방어기제였는지 뭔지는 모르지만.

멋쩍...

누군가의 뒷담화 대상에 오르는 듯한 묘한 기분과
스스로에 대한 자책감과 수치심이 견디기 어려워 일부러 상반되는 감정을 끌어들이려 부단히도 애쓰는 나였다.
그런 내가 낯설었다.

예전같으면 집에 들어와 내 방 침대 이불 속에 누워
우울한 노래만 주구장창 틀어놓고는 세상에서 가장 큰 죄를 지은 사람처럼 하루를 보낼텐데.
당장 그럴 만한 쥐구멍은 다 막혀서였는지
낯선 내가 낯선 탈출구를 만들고 있었다.
어쩌면 실수를 해놓고도 뻔뻔한 모습이었다.
내가 미워하던 누군가의 뻔뻔한 얼굴이 내 얼굴에 비치는 것만 같았다. 한편으론 누군가가 나이가 들면 얼굴에 철판 깔린다는데 내가 나이가 들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신기한 것은 시간이 지나도 문득 떠오르는 그 기억때문에 길을 걷다가도 영화를 보다가도 없던 이불까지 만들어 킥해버리고 싶을 정도지만 이상하게 어떤 부분에서는 자유로워졌다는 것이었다.

참 자유를 경험하고 계시는 분

나는 완벽하지 않은 완벽'주의자'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앞에서 약점잡힌다거나 멍청해보인다거나 애처로워보인다거나 동정심을 산다거나 하는 것을 매우 싫어하였는데,
의외로 사람들 앞에 이상한 사람, 바보같은 사람, 실수하는 사람으로 보여지니 더 이상 연기하지 않아도 되어서
그리고 완벽한 사람으로 보여지기 위해 했던 사소한 노력들을 덜 해도 되는 것 같아서, 또 그런 나임을 이젠 사람들에게 들켰기(?)때문에 내게 높은 기준을 기대하지 않을 것 같아서 마음이 한편으론 참 가벼워졌다.

이전에도 이와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
내가 학생시절 마음에 들어서 산 털로 만들어진 티셔츠가 있었는데 티셔츠 라벨에도 송충이라는 글자가 적혀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아무튼 그 옅은 카키색의 송충이 털 티셔츠는 이름부터 마음에 쏙 들어 적은 용돈을 털어 구매하였는데 나의 이 이상한 취향과는 너무나도 다른 사회적 가면때문에 사놓고도 입지 못한 적이 있었다.
아무도 나를 모를만한 집앞 식당에 갈때만 입는 등.. 그렇게 몰래몰래(ㅋㅋ) 입긴했는데 어느 날 갑자기 학교에 송충이 옷을 입고갈 수 있겠다는 용기와 근자감이 생겨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송충이 옷을 입고 학교에 갔고, 물론 옷이 너무 특이하여 어떤 후배로부터 참 따뜻해보여요. 라는 말을 들었었다. 아마 그건 따뜻해보였기 때문이 아니라 나의 옷이 별로 친하지 않은 후배와의 대화 주제가 될만큼 참 송충이스러웠기 때문이리라.. 사실 그 옷은 밍크처럼 부드러워보이긴했지만 따뜻하지도 않았다.

?? : 그 옷 참 따뜻해보여요~

무튼 나는 그 옷을 입고 학교에 간 그 날 묘한 자유와 자아의 실현을 경험했다. 사회적 가면뒤에 숨은 나의 취향, 나의 진실을 그냥 드러냈을 때, 송충이 옷을 입었을 때 나는 가장 나다워지는 것을 느꼈고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날 이후론 왠지 근자감이 쏙 들어가서 학교에 입고 가진 않았지만 말이야.
이것을 송충이 confidence boost system이라 부르자.

그래서 이 글의 결론은...
그냥 실수든 아니면 다른 사람의 눈에 좀 이상해보이든
오히려 그것이 나답고 솔직할 때 비로소 자유로워지는 부분이 있다는 것을 기록하고자 함이다.
반사회적이라면 절제해야하지만 누군가에게 큰 피해를 끼치지 않는다면 누구에게도 상처가 되지 않는다면 가끔은 나다워지는 것도 좋지않을까. 늘 이상적인 모습을 보이려 애쓰는 것보다 행복함은 배가 될지도 모른다.
이번 실수를 통해 어차피 저지른거 그냥 젊을 때 감당하고 마음이나 단련하자는 심정으로 받아들이니 이런 이상한 내가 더 좋아졌다.

나는 완벽하지 않기에 이제 자유롭다.
나는 이상해서 내가 좋다.
남들과 달라 외로운 누군가도, 오늘 실수해 바보같았던 누군가도 그런 자신을 더욱 위로해주기를!

mistakes make freedom.

 

피ㅡ쓰.